우리 주변에는 기불대수(己不代數)라 하여 자신(本人)은 대수(代數)에 넣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즉 代는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반면, 世는 자신까지 포함하여 계산한다는 주장이다. 어떤 門中에서는 宗報에 이러한 내용을 게재하여 더욱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世와 代는 똑같은 뜻으로 원래는 世(字)를 더 많이 사용하였는데, 중국 당나라 때에 태종(太宗)의 이름이 세민(世民)이므로 世(字)를 피휘(避諱)하여 代(字)로 사용하였음을 알아야 하겠다. 기불대수(己不代數)란 말은 出典에 보이지 않으며, 단지 우리나라에 족보가 크게 성행하면서 족보의 世數 표시를 보고 지어낸 말로 추측된다.
우리나라 족보는 1면(面)을 6단(段)으로 나누고 맨 아랫단에는 子孫의 이름만을 기록하였다가 다음 장의 상단(上段)에 다시 그 이름을 쓰고 생졸(生卒)과 履歷(이력)을 자세히 기록하여, 각 면(面)마다 5代씩 수록함으로써 代數를 계산하기 편리하게 하였으며, 始祖를 1世로 하였다.
그리하여 만일 高祖로부터 자신까지 세어오면 5世가 되는데, 실제로는 高祖가 4代祖가 된다. 즉, 시조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26世라면 始祖는 당연히 25代祖가 되고, 자신은 25代孫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世와 代가 달라서가 아니요, 뒤에 祖나 孫을 붙였기 때문에 한代가 줄었음을 알아야 한다.
족보의 世數는 객관성을 강조하여 시조를 1世로 한 반면, 몇 代祖 또는 몇 世祖라고 칭하거나 몇 代孫 또는 몇 世孫이라고 칭하는 것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後孫인 본인을 기준으로 하여 주관적으로 지칭하기 때문에 한 代가 줄어드는 것이다. 祖는 자신의 先祖란 뜻이요, 孫은 선조의 後孫이란 뜻이므로 자신이나 선조는 世의 數에서 1이라는 수를 빼는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자신의 성(姓) 아래에 氏(字)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족보에는 전주이씨 족보니, 김해김씨 족보니 하여, 氏(字)를 붙이는데, 이 역시 객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자신의 선조를 남에게 말할 경우에는 몇 代의 비선조(鄙先祖)라고 칭하는데 이는 자신을 위주로 한 주관적 호칭이다.
그러므로 25代祖는 바로 25世祖이고 25代孫은 바로 25世孫일 뿐, 하등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만일 4代祖인 高祖를 5世祖라고 칭한다면 이는 자신까지도 先祖로 친 것이 되며, 4代孫인 高孫이 자신을 5世孫이라고 칭한다면 이는 高祖까지도 子孫으로 친 것이 된다.
세상에 어찌 이러한 妄發망발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랬더니, 항의성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관심이 있는 문제이며 따라서 그만큼 잘못 알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한 번 잘못 인식된 지식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가 보다. 상당히 유식한 분인데도 자신의 잘못된 상식이 옳다고 고집한다. 그 분들의 논리대로라면 祖, 子, 孫이 2代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祖, 子, 孫은 엄연히 3代이지, 2代가 아니다. 3代와 3世가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백대(百代)와 백세(百世), 만대(萬代)와 만세(萬世) 역시 동일한 의미이지, 백세는 99대이고, 萬世는 9천 9백 99代가 아니다. 단지 예전에는 몇 世祖나 몇 世孫이라는 단어보다 몇 代祖니 몇 代孫이니 하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제 족보의 世 아래에 孫字를 붙임으로 말미암아 26世는 바로 26世孫으로 인식하여 이러한 혼란이 야기된 것으로 보인다.[성백효(현, 海東經史硏究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