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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연혁 성균관 소개 > 역사 > 성균관 연혁

성균관 연혁

유교의 성현

중국의 유교

한국의 유교

왕조 연도 연혁
고구려 372년(소수림왕2년) 태학(太學) 설립
신라 682년(신문왕 2년) 국학(國學) 설립
727년(경덕왕 6년) 태학감으로 개칭
776년(혜공왕 12년) 국학으로 환원
백제 374년(근초고왕 29년) 고흥을 박사로 삼음
고려 930년(태조 13년) 서경(西京)에 학교 설치
992년(성종 11년) 국자감(國子監) 설립
1109년(예종4년) 국자감에 7재(七齋) 설치
1275년(충렬왕 원년) 국학(國學) 설치
1298년(충렬왕 24년) 성균감으로 개칭
1308년(충렬왕 34년) 성균관(成均館)으로 개칭
1356년(공민왕 5년) 국자감으로 환원
1362년(공민왕 11년) 다시 성균관으로 개칭
조선 1398년(태조 7년) 현 위치에 건립
1400년(정종 2년) 명륜당 소실
1407년(태종 7년) 명륜당 중건. 묘정비 건립
1472년(성종 3년) 전사청 건립
1475년((성종 6년) 존경각 건립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
1601년(선조 34년) 중건, 보수하여 현재에 이름
1636년(인조 14년) 비천당(丕闡堂), 일양재(一兩齋), 벽입재(闢入齋) 건립
1743년(영조 19년) 육일각(六一閣) 건립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경학원 규정을 제정.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개편
근현대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경학원 규정을 제정.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개편
1930년 경학원 부설로 명륜학원을 설치
1939년 명륜전문학교 개칭
1944년 명륜연성소로 개편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성균관으로 환원
11월 유림대회 개최. 성균관대 기성회 조직(心山 金昌淑선생이 대표)
1946년 유림의 성금으로 성균관대학교 설립, 유도회총본부 설립
1953년 성균관대학교 종합대학 승격
1963년 재단법인 성균관 설립

성균관의 연원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태학(太學)을 설립한 때로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 682년에는 국학이 설립되었고, 백제시대에는 374년에 고흥을 박사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로 들어와 930년 서경에 학교를 설치하고, 992년에 국자감을 설치하였다.

고려의 국립대학인 국자감(國子監)이 충렬왕(忠烈王) 24년(1298)에 성균감(成均監)으로 되었다가 충선왕(忠宣王) 즉위년(1308)에 성균관이라 하였다. 공민왕(恭愍王) 5년(1356)에 국자감으로 환원하였다가 1362년 다시 성균관으로 고쳐서 조선시대에 계속 대학의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때의 위치는 개성(開城)에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서울[漢陽]의 숭교방(崇敎坊 明倫洞)에 있었는데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다.

조선 태조 7년(1398) 7월에 교사(校舍)가 창건되었는데 이 해를 근대 학제 개편 이후의 성균관대학교 창립 연도로 삼고 있다. 태조 당시에는 유학(儒學)을 강의하는 명륜당(明倫堂), 공자(孔子) 및 중국과 한국의 역대 성현들을 모신 문묘(文廟:大成殿, 東ㆍ西廡), 유생(懦生)들이 거처하는 동ㆍ서재(東ㆍ西齋) 등이 있었다. 성종 때에 향관청(享官廳)과 존경각(尊經閣:도서관)이 세워졌고 현종(顯宗) 때에 비천당(丕闡堂:제2과거장)이, 숙종(肅宗) 때에 계성사(啓聖祠:공자 및 五聖의 父를 奉安)가 증설되었다. 고종(高宗) 24년(1887) 경학원(經學院)을 부설하였다.

고종 32년(1895) 성균관 관제(館制)를 칙령 제136호로 반포하여 성균관은 문묘를 받드는 기관으로 하고 교육은 경학과(經學科)에서 전담하게 하였다. 반상(班常)의 구별 없이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교육의 기회 균등을 밝혔으며 시대적 요구와 추세로 인하여 '문명(文明)한 진보(進步)에 주의(注意)함을 요지(要旨)로 함'을 발표하였다.

1910년 한ㆍ일합병으로 인하여 성균관과 향교의 재산을 분리하고 교육을 일체 중지하여 국립대학과 민족 교육의 맥을 끊었고, 명칭도 경학원(經學院)으로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그 대신 일제는 식민지 교육을 위하여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犬學)을 1924년 설립하였다. 당시 전국의 유림(儒林)이 주권을 지키려는 운동으로 의병활동(義兵活動)과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 등을 일으키고, 통문(通文)을 돌려 성균관의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 회복을 선도하자 그 회유책의 일환으로 1930년 명륜학원(明倫學院)을 설립하게 되었다. 1939년에 명륜전문학원으로, 1942년 명륜전문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진실한 유학 교육과 문화 창달에 미치지 못하고 일본의 변질된 황도유학(皇道儒學)을 강요하게 되었다. 교과 과정에 있어서도 국민도덕ㆍ일어ㆍ일본사ㆍ교련 등을 넣어서 그들에 영합하는 교육으로 변모하였다. 그것마저 1943년 폐교 조치가 되고 청년연성소(靑年鍊成所)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에 의해 말살되었던 유일한 국립대학으로서 민족 교육을 이룩해내었던 전통을 되살리는 운동이 8ㆍ15광복과 더불어 일어났다. 1945년 명륜전문학교로 문을 열었다가 미군정시대에 명칭을 성균관으로 변경하였고 1946년 9월 25일 성균관대학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1953년에는 성균관대학교로 종합대학이 되었다. 초대 학장 및 총장에는 전통 유림으로서 일제에 대항하였고 해방 후에는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이 취임하였다.

현재 성균관은 성균관대학교와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 234개의 향교와 더불어 유교사상과 전통문화 계승·발전의 산실로서 그 맥을 잇고 있다. 특히, 매년 전국 향교를 중심으로 실시되는 <청소년 인성교육>을 비롯한 각종 유교문화활성화 사업, 사회봉사 활동, 예절상담을 통한 생활의례 보급,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출판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