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漢字가 도입된 것은 (遙遠하여) 어느 시대인지 정확하지 않다. 一說에 기원전 2세기경 遼東 반도와 한반도 북부에 衛滿朝鮮이 세워지고, 기원전 108년에 漢武帝가 漢四郡을 설치해 古朝鮮 영토를 자국의 영토로 병합했을 당시에 한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却說하고) 康熙字典은 고작 300여 년전 1716(康熙 55)년에 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기관인 太學은 삼국시대부터 있어왔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玉篇이 처음 교육과정으로 편입된 건 고구려의 太學에서였다고 한다. 태학은 372년(小獸林王 2년)에 설치되었다.
玉篇이 우리나라에 전파된 건 삼국시대였으나,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字典을 출간한 것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韻會玉篇>은 490여 년전 조선 전기의 聲韻學者학자 崔世珍이 1536년(中宗 31년)에 편찬한 字典이다. 현대는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30년에 걸쳐 2008년 完刊한 世界 最大 最高의 <漢韓大辭典> 16권도 있다.
<大漢韓辭典>은 한마디로 우리 실정에 맞게 편찬한 자전이다. 그 예로 우리나라만이 사용하는 수많은 國字와 國音이 실려있다. 누가 떠벌이는 소위 강희자전에는 아주 흔히 쓰는 田畓의 <논 답(畓)>자도 없다. 또 安否를 물을 때 쓰는 <무탈(無頉)>도 없다. 우리는 “기를 이(頉)”를 無와 함께 쓰고 ‘무탈’이라 읽는다. 강희자전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무슨 강희자전 타령인가!
[입만 열면 들먹이는 성균관, 그러나 성균관을 부정하는 似而非 儒者! 내게 한 말을 다시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