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본란에 유건쓰는법에 대해서 물었다. 필자의 답변이 “현대의 향교나 서원에서 儒林들이 儒巾을 쓰는 방법은 “전민후사(前民後士)”법으로 씁니다. 전민후사(前民後士)법이란, 儒巾의 평평한 부분을 앞으로 오게하고, 접힌 부분(선비 ‘士’ 字 형상)을 뒤로가게 쓰는 것입니다.”라고 답을 쓰면서 “古禮에도 前士後民의 說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는 현대의 유건쓰는 법과 정반대의 기록 곧 楸溪 尹孝孫(1431-1503)의 ‘前士後民(說)’ 때문이었다. 尹孝孫은 “관학 유생의 관이 근본적으로 정제된 것이 없어서, 선생이 유건의 제도를 前士後民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선비들의 의표로 삼았다.(官學儒冠本無定制 先生制巾 以前士後民爲制 以爲我東諸儒之儀表)”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이는 (현대로 말하면) 유건을 거꾸로 쓰는 법이다. 따라서 500년도 훨씬 지난 尹孝孫의 前士後民은 死文이 되고, 前民後士법이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민후사란 “바느질 선이 없는 밋밋한 부분을 앞으로 하고, 바느질선과 유건을 접은 형태의 선비 ‘士’ 모양을 뒤로 가게 쓰는 방법이다. 조선시대 檀園 金弘道의 風俗圖는 물론 儒賢들의 초상화도 모두 전민후사로 묘사하고 있다. 현대의 향교•서원의 의식에서도 이 방법이 통용되고 있다. 이를 반대로 쓴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은 마치 <챙>이 달린 모자를 거꾸로 쓴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或者가 답변이랍시고 책속에 묻혀서 이미 死文이 된 前士後民을 들고 나와 아는 체 반론으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유건을 써보기는 커녕 아예 구경도 못한 似而非의 詭辯일 뿐이다. 자칭 儒者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하는 짓마다 성균관과 반대의 궤변을 恣行无忌한다. 却說하고, 성균관에 와서 성균관을 부정하는 이런 사이비의 궤변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