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禮)의 뿌리는 흔들 수 없지만, 잎은 四季에 따라 변화(變禮)하듯 禮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등산로는 산을 오르는 길이다. 그 길은 쉽고 편한 길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통해서 산에 오른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길이 되었다. 예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이 길(禮法)을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산을 올랐다. 이 일은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데 출발은 같거나 비슷하였지만 모두 같은 방향으로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사이 많은 사람들이 여러 길을 개척해 놓았다. 그 결과 수백 수천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사방으로 수 없이 많아졌다. 그 많은 길들은 어느 곳으로 올라가도 궁극적으로 정상에 도달할 수는 있다.
그동안 산에 오르는 방법을 일러주기 위하여 많은 地圖가 나오고, 수다한 안내서들이 발간되었다. 따라서 어떤 이는 지도를 보고 오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안내서를 보고 오르기도 하였다. 이런 지도와 안내서를 통틀어서 우리는 <禮書>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여러 책자들을 참고하여 또 다른 길(예법)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곳의 등산로라도 유독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길은 있게 마련이다. 이 길은 어느덧 變禮가 되고 俗禮가 되었다. 이 길이 오히려 쉽고 간편하게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첩경이 되기도 하였다. 옛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안내서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오히려 어렵고 번거로운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옛길로 오르기를 고집하는 이도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옛 안내서(禮書)대로 정상에 오르라고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전통이고, 조상들의 방법이었다고 해도 설득력이 없다. 옛날에도 ‘禮不泥古因時制宜’라 하였다. 누구든 쉽고 간편한 길을 두고 험하고 힘든 길을 택할 리가 없다. 주자도 家禮를 지을 때 당시 유행하던 俗禮를 따랐다. “무릇 명분을 삼가고 사랑과 공경을 높이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그것을 시행할 즈음에는 또한 헛된 형식은 생략하고 근본의 실체를 펼쳤다.(謹名分 崇愛敬 以爲之本 至其施行之際 則又略浮文 敷本實)”고 고백했다. 儒者를 자칭하면서 섣불리 앵무새처럼 古禮만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사이비 초짜는 제발 내 글에, 어설픈 지식으로 초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