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예(禮)에는 근본이 있고 형식〔文〕이 있다. 집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명분을 지키거나 사랑하고 공경하는 실체가 그 근본이고, 관례(冠禮)와 혼례(婚禮),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의 의식과 장치, 법도와 절차는 그 형식이다. 그 근본은 집에서 날마다 행하는 일정한 본체가 있으니 진실로 하루라도 다듬지 않을 수가 없거니와, 그 형식 또한 모두 사람 된 도리의 처음과 끝을 가다듬기 위한 것이니, 비록 그것을 행하는 때가 따로 있고 시행할 장소가 따로 있지마는, 그러나 평소에 분명하게 따져서 평소에 익숙하게 익히지 않으면, 일을 당하여 또한 적절하게 절차에 대응할 수가 없으니, 이 또한 하루라도 강론하여 익히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삼대(三代)에는 예경(禮經)이 완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건물과 도구와 복장의 제도나 드나들며 거처하는 범절은 모두 이미 지금 세상에 맞지 않다. 세상의 군자들이 비록 간혹 고금의 변화를 참작하여 다시금 한 시대의 법도를 만들기는 하지만, 그러나 혹은 상세하고 혹은 간략하여 종잡을 수 없고, 심지어는 그 근본을 잃어버리고 그 말단에만 힘쓰거나, 실질에는 느슨하고 형식에만 급급하기에 이르렀다. 본디 뜻이 있어 예를 좋아하는 인사라도 오히려 그 요체를 거행하지 못하거니와, 가난에 찌든 자는 더욱이 끝내 예에 맞출 수가 없다고 걱정한다.
어리석은 나로서는 둘 다 안타깝다. 그래서 일찍이 홀로 고금의 서적을 살펴보며 궁구하여, 그 변경하지 못할 대체는 그대로 두고, 그 사이에 약간 가감을 하여 일가(一家)의 책을 만들었다. 무릇 명분을 삼가고 사랑과 공경을 높이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그것을 시행할 즈음에는 또한 헛된 형식은 생략하고 근본의 실체는 펼쳤으니, 이로써 공자께서 ‘선진(先進)을 따르겠다’고 하신 의미를 스스로 부쳐 둔다. 참으로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과 더불어 익숙하게 강론하고 힘써 행하여, 옛사람들이 몸을 닦고 집 안을 정제하였던 도리와, 죽음을 삼가고 멀어진 사람을 추모하는 마음을 거의 다시 보고, 국가에서 교화를 숭상하고 백성을 인도하는 뜻에도 또한 조금이나마 보탬이 있기를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