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혼·상·제의 예절을 四禮라 한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사례에 맞는 형식과 절차가 있었으며, 이를 지키고자 노력해 왔다. 그 중에서도 상례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失禮를 범하기 십상이다. '喪家에 弔問 갔을 때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靈位에 哭을 하고 절을 해야 하는지, 낯모르는 상주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자신이 없다. 경험이 많은 분을 따라가면 그래도 괜찮지만 혼자서 가게 될 경우 누구나 약간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조문하는 의식은, 상주가 成服을 하였을 경우 弔客이 들어가 靈位에 곡하고 재배한 다음 나오면 상주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조객에게 절을 하고, 조객 또한 이에 따라 맞절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객들이 조문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亡者의 영위에 절을 하지 않는 분도 있고 상주에게 인사하지 않는 분도 있다. 어떤 것이 옳은지 참으로 갈피를 잡기 어렵다. 『예기(曲禮)』에는 弔와 傷을 구별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산 사람을 알면 弔를 하고 죽은 사람을 알면 傷을 한다. 만일 산 사람만 알고 죽은 사람을 모를 경우에는 조만 하고 상은 하지 않으며, 죽은 사람만 알고 산 사람을 모를 경우에는 상만 하고 조는 하지 않는다.(知生者弔 知死者傷 知生而不知死 弔而不傷 知死而不知生 傷而不弔)” 弔는 상주를 위로하는 것이고 傷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애도하는 것이다. 즉 죽은 사람만 알 경우에는 영위에 곡하고 재배만 할 뿐 상주에게 위문하지는 않으며, 산 사람만 알 경우에는 상주에게 위로만 할 뿐 영위에 곡을 하거나 재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옛 분들은 순수하고 질박하였으므로 죽은 사람을 모르는데 애도할 이유가 없으며, 상주를 모르는데 인사를 나누고 위로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요즘에도 곡례의 이 예절을 철저히 지켜 영위에 절하지 않거나 상주에게 인사하지 않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이러한 분들은 자신과 같이 행동하지 않고 망자를 모르면서도 영위에 절을 하거나 상주를 모르면서도 상주에게 위문하는 것을 큰 결례로 여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고향에서 대대로 살아 亡者와 喪主를 모두 아는 경우가 적고, 고향을 떠나 학교나 직장을 통하여 서로 아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상주만 알거나 망자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조문 갔을 경우 평소 망자와 인사한 적이 없다 하여 딴 분들은 모두 영위에 절을 하는데 자신만이 뻣뻣이 서 있으면 참으로 어색하다. 그리고 망자만 안다 하여 영위에만 절하고 나오려 하는데 상주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자신을 향해 절할 경우 상주를 모른다 하여 절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나오는 것 역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조선 純祖 때의 대학자로 성균관 좨주와 대사헌 등을 역임한 梅山 洪直弼(1776∼1852)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친척과 世誼가 있는 사람으로 당연히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알아야 할 사이에 미처 相見하지 못했다면 어찌 얼굴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의 準例를 따라 상주에게 위문하지 않거나 망자의 영위에 애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弔와 傷은 모두 사람이 죽었을 때에 하는 의식이니, 曲禮의 내용은 서로 알지 못하면 곡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리석은 나의 생각에는 산 사람만 아는 경우도 마땅히 죽은 사람을 위해 애도해야 하고, 죽은 사람만 아는 경우도 마땅히 산 사람을 위해 위문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곡례의 글에 너무 집착하여 마땅히 곡을 해야 할 자리에 곡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如戚誼世契 宜相識而未及相見者 曷可準以不知者之例 而不傷不弔乎 況弔傷皆致命之辭則非謂不相知則不哭也 愚意則知生者亦當哭死 知死者亦當哭生 恐不可太泥曲禮之文而當哭不哭也 「梅山集 卷十六書」]”
위의 글을 근거해 볼 때 망자를 모르거나 상주를 모르는 경우에 일반인과 똑같이 행동한다 하더라도 큰 결례가 되지 않는다고 보아진다. 또한 요즘은 망자와 큰 상주를 모두 모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부하 여직원의 喪事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옛날의 격식에 너무 구애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행례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그렇다고 낯모르는 부인의 상에 절하는 것은 망발이 아닐 수 없으며, 망자와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곡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종교 의식을 따르는 喪家가 있어 영위에 곡을 하거나 재배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집안도 없지 않다. 조객이 망자와 절친한 사이로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전통예절을 따라 영위에 곡하는 것을 막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喪禮에도 남녀를 구별하여 남자 손님은 바깥상주가 맞고 여자 손님은 안상주가 맞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직장에 함께 근무하는 여직원들이 남자 손님들과 함께 뒤섞여 조문을 왔을 경우 바깥상주가 이들을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모든 예절은 상황에 따라 변통하여야 한다. 古禮에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지만 자신의 위치나 신분을 망각하고 主見없이 행동해서도 안 된다. 예절이 만들어진 本意를 깊이 인식하고 현실에 맞게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孔子는 일찍이 예를 따르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緇布冠(치포관)은 가는 삼베로 만드는 것이 예인데 지금 사람들은 명주를 사용하여 만드니 이것은 간편하다. 나는 일반 사람들을 따르겠다. 군주에게 堂下에서 절을 올리는 것이 예인데 지금 사람들은 堂上에서 절하니, 이것은 거만하다. 나는 비록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만 당하에서 절하는 원래의 예를 따르겠다.[麻冕禮也 今也純 儉吾從衆 拜下禮也 今拜乎上 泰 雖違衆 吾從下 「論語 子罕」]”
또한, 賻儀는 상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이나 금전으로 하되 서식에 맞게 정중하게 써서 상주에게 직접 전달하지 말고 護喪所에 내야 하는 것이다. 부의의 서식은 일정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피봉의 앞면에 ‘賻儀’라고 쓰고 뒷면에는 자신의 이름(○○○ 謹弔)을 쓴다. 봉투에 돈을 넣을 때는 흰 종이로 싸되 금액을 기입하고 피봉과 같은 식으로 쓴다.[출처; 난석재예사랑, http://cafe.daum.net/YEsarang/8iHv/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