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나 서원의 향사절차에서 망료의식(行望燎禮)이 있다. 그러나 이 의식이 어디에는 ‘望燎’이고 어디에는 ‘望瘞’이다. 심지어 과거 성균관에서도 구별 없이 이를 혼용했는데, 이는 잘못이다. 그 이유는 망료와 망예는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제향은 陽祀와 陰祀로 구분된다. 이의 구분은 (대체로) 의례절차에서 (降神時) ‘분향’만 하면 양사이고, ‘뇌주’만 하면 음사이다. 양사는 문묘와 서원의 제향이요, 음사는 사직단의 제향이다. 한마디로 陽祀는 불사르고 陰祀는 묻는 것이다. 양사의 종묘와 문묘는 동쪽에 두고, 음사의 사직단은 서쪽에 두는 것이다.[이것이 음양의 이치이다.]
고례에 따르면 문묘와 서원의 제향은 양사로서 강신분향만 한다. 반대로 사직단의 제향은 음사로 강신뇌주만 한다. 양사에는 축문을 불사르는 ‘燎’이고, 음사에는 축문을 땅에 묻는 ‘瘞’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양사는 남쪽에서 제사하고, 음사는 북쪽에서 제사한다.”고 하였다. 남쪽은 ‘火’로서 ‘陽’이고, 북쪽은 ‘水’로서 ‘陰’이다. 불태우는 것은 陽이고, 땅에 묻는 것은 陰이다.
망료는 초헌관이 망료위에 나아가서 축문을 불사르는 것을 살펴보는 것이고, 망예는 묻는 것을 살펴보는 것으로써 태우는 것과 묻는 것의 차이이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두고 (성균관의 전임직원이) 문묘제향에서 축문과 폐백을 불사르는 것은 ‘望瘞’가 바른 定義라면서 (笏記를) ‘망예로 고쳤다.’고 너스레를 떨었다.[그러나 세상사가 음양의 이치를 벗어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行望燎禮(성균관 발행 ‘유교와 석전대제’ 홀기)
* 謁者引初獻官詣望燎位 北向立(執禮帥贊者詣望燎位 北向立)
* 大祝以篚取祝板及幣降自西階置於坎
* 可燎置土半坎(불사르고 흙을 반쯤 묻으시오.)
[참고문헌];
周나라 사람들은 南郊에서 감응하는 天神에게 제사 지내고 북교에서 神州의 神祇에게 제사 지냈다. 이 때문에 周禮 大司樂에서 “雲門에 맞추어 춤추면서 천신에게 제사 지내고, 咸池에 맞추어 춤추면서 地祇에게 제사 지낸다.” 하였고, 또한 地官 牧人에서 “陽祀에는 털빛이 순수한 붉은색의 희생을 쓰고, 陰祀에는 털빛이 순수한 검은색의 희생을 쓴다.” 하였는데, 그 주석에 이르기를, “陽祀는 남교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이며, 陰祀는 북교에서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이다.” 하였으며, 孔穎達 또한 “郊에서 제사 지낸다. 하늘과 땅 오직 두 신이 있을 뿐이다.” 하였다.
또 外邑에서 제사 모시고 축문과 폐백을 묻지 않는 것을 금하였는데, 大明集禮를 보니 종묘 제향에는 望燎, 社壇 제향에는 望燎로 되어 있다. 대체로 郊祀는 陽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역대로 그것을 태웠지 묻는 법이 없었고, 社稷은 陰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역대로 반드시 묻었지 태우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宗廟만은 묻기도 하고 태우기도 해 왔는데, 예로부터 폐백만 묻고 태웠지 축문까지 묻고 태우지는 않았었다. 그것은 아마 폐백을 더 중히 여겼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국조오례의에는 종묘사직의 大享에 다 望瘞로만 되어 있는 것을 선왕께서 묻는 것을 불태우는 것으로 고쳤기 때문에 내가 신축 년(1781, 정조5)에 儀註를 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