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란의 뒤 몇 글을 살펴보니 도대체 예라함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늘어놓은 논조인지 그분의 사고 정도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관혼상제 예법은 주자가례에 근거하지 않은 예법은 통용예법이 아니라 그 한 가문에서 무식이었든 또는 고의 개변이었든 그 가문에서 통용되는 예이지 전체 예인에게 통용시키려 한다면 이는 무리로서 근본 예법을 모독하는 자기만용이라 생각합니다.” (게시문 삭제 요청합니다; 2007-10-18 07:39:47)
위 시비는 (어려분이 그동안 보셨듯이) 고례와 현대의 시속을 접목하는 나의 답변에 대한 반박성 글이었다. 그래서 내가,
[도대체 예라함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늘어놓은 논조인지 그의 사고가 의심스러울 정도]라는 이자의 글의 반박으로,
“800년 전 주자가 환생한 듯합니다. 주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이라 쓰고, 그가 뒤에 덧붙인 “자기 학문이 조금 높다 자신하여도 거만과 오만을 버리고 겸손으로 갈고 닦아줄 뿐” 이라는 말을 되돌려 주고, 끝을 맺은 바 있다.
그런데 이 자가 성균관을 떠난다며, 고별사를 몇 번씩이나 쓰고서도 ‘생쥐 풀방구리 들랑거리듯’ 하면서 온갖 궤변을 늘어 놓았다. 또 틈만 나면 (내가 먼저) ‘주자가 환생했다.’ 고 비꼬았다면서 적반하장으로 물고 늘어졌었다. 이 자가 그 이름도 유명한 (책자랑, 한문자랑을 일삼는) ‘草庵 田桂賢’ 이라는 위인이었다. (이때는 草庵을,草菴으로도 썼었다.) 이렇게 지나온 세월이 어느덧 <十有五年>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