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의 호칭 문제만큼 아리송한 것도 드물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그가 지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일찍이 삼촌이란 칭호의 모순을 지적한 적이 있다. 즉 우리들은 숙부를 삼촌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당숙을 오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조카와 숙부, 또는 당질과 당숙 사이의 촌수를 나타낸 말로 조카도 삼촌이라 칭할 수 있고 당질도 오촌이라 칭할 수 있기 때문에 숙부와 당숙만을 칭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참으로 일리 있는 주장이다. 선현의 문집 등을 읽다보면 외구(外舅)와 내구(內舅)라는 칭호가 자주 보인다.
구(舅)는 생(甥)과 대칭되는 칭호로 「이아(爾雅)」에 보면 '나를 구(舅)라 칭하는 자는 곧 생(甥)이다.' 하였다. 구(舅)는 외숙 또는 장인(妻父)을 일컫는 만큼 생질과 사위 모두 생(甥)이다. 여기에 내외(內外)를 붙여 외숙과 장인을 구별하여 외구는 장인, 내구는 외숙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위를 외생(外甥)이라 칭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자그대로 외구(外舅)를 외숙으로 표현하였다가 뒤늦게 장인임을 알고 수정한 경험이 있다.
「이아(爾雅)」 석친(釋親)에 보면 '어머니의 형제(외숙)를 구(舅)라 한다.[母之晜弟爲舅]' 하였고 또 '아내의 아버지(장인)를 외구(外舅)라 하고 아내의 어머니(장모)를 외고(外姑)라 한다.[妻之父爲外舅 妻之母爲外姑]' 하여 분명히 외구가 장인임을 밝히고 있다. 「국어사전」 (이희승 저, 민중서림)을 보면 '외구(外舅)는 장인을 편지에서 일컫는 말'이라 하였고,' 내구(內舅)는 외숙으로 편지 같은데 쓰는 말이다' 하였다. 그러나 편지뿐만 아니라 모든 기록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외종(內外從)이 문제가 된다. 내외종은 내종사촌과 외종사촌으로 중표형제(中表兄弟)라고도 칭한다. 중(中)은 내(內)의 뜻이고 표(表)는 외(外)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의 내와 외가 문제이다. 누구를 내로 보고 누구를 외로 보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들은 으레 외숙의 자녀를 외종, 고모의 아들이나 딸을 내종, 또는 내종사촌이라 하고 외삼촌의 아들이나 딸을 외종, 또는 표종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역시 모든 기록은 위의 내구, 외구와 연결시켜 고모의 자녀를 외종이라 하고 외숙의 자녀를 내종이라 하여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즉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친정은 외가이기 때문에 외숙의 아들은 당연히 외종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전의 기록은 어머니는 우리 집으로 시집왔기 때문에 내가(內)가 되고 고모(딸)는 우리 집에서 시집갔기 때문에 외(外)가 되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이 시집가서 낳은 자녀를 외손이라고 칭하지 않는가. 또한 어머니의 형제(외숙)를 내구라 칭하므로 그가 낳은 자녀를 내종이라 칭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순조(純祖) 때의 학자인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외숙의 아들을 내종이라 하고 고모의 아들을 외종이라 한다. 이는 비단 「이아」에 기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주자(朱子)의 정론(定論)에도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외숙의 아들을 외종이라고 부르는 자가 있으니, 이는 외가의 형제라고 인식하여 이렇게 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형제를 내구(內舅)라 칭하니, 그렇다면 내구의 아들이 어찌 내종이 되지 않겠는가. 여자가 출가하면 모두 외(外)가 된다. 그러므로 사위를 외생이라 칭하고 손자를 외손이라 칭한다. 이 뜻을 미루어 본다면 고모의 아들을 외종이라고 칭해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매산이 말한 대로 우리 문헌에는 거의 모두가 이렇게 표시되어 있으므로 고전을 읽는 이들은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내종과 외종을 문자(記錄)로 밝힐 때에는 외숙의 자녀인가 고모의 자녀인가를 좀 더 분명히 밝혀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호칭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문자와 구어(口語)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알고 서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자료; 한국고전번역원, 필자; 成百曉, 국역연수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