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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정곤
喪家의 治喪 前 조문 예법에서 服人이나 弔客 공히 拱手法은 남자는 <尙右>입니다.
이는 陰陽의 구별로서 여러 문헌이 이렇게 定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에서 禮記(檀弓 上) ‘顔淵之喪’의
끝 부분을 들어서 服人을 제외한 조객은 平常의 공수를 주장하는 見解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나누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성균관의 “흉사 시 공수‘는, 상을 당한 상가에서의 조문예법을 말한 경우입니다.
[참고로 禮記(檀弓 上)의 原文과 譯文을 덧붙입니다.]
顔淵之喪, 饋祥肉 孔子出受之, 入彈琴而后食之.
”안연(顏淵)이 죽어 그의 대상(大祥)에 안씨(顔氏) 집으로부터 상육(祥肉; 대상을 지낸 고기)을 보내왔다.
공자는 방에서 나와 스스로 받아서 방으로 들어가 거문고를 탄 뒤에 먹었다.”
孔子與門人立, 拱而尙右, 二三子亦皆尙右. 孔子曰 ‘二三子之嗜學也, 我則有姉之喪故也.’ 二三子皆尙左.
“(어느날) 공자가 문인들과 서있을 때 손을 맞잡았는데 오른손을 위로 했다. 그러자 이 삼자도 모두 오른손을 위로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배우기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자씨(姊氏)의 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니 이 삼자가 모두 왼손을 위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