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 입산할 때에 머리를 깎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이도 있기에, 내가 일찍이 사계(金長生)에게 물어 봤더니, 사계는 머리를 깎은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오직 김남창 현성(金南窓玄成)만은 그렇지 않다고 극력 해명하면서 말하기를, ‘율곡이 하산하고 나서 1, 2년이 지나 과거에 응시하러 서울로 들어왔다. 그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는 내가 직접 가서 살펴보았는데, 그때 율곡은 벌써 높은 명망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자리에 빈객이 가득하였다. 율곡이 마침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머리털이 하도 길어서 땅에 닿을 정도였으므로 일어서서 빗기까지 하였다. 머리를 새로 기른 사람이라면 몇 년 동안에 이렇게까지 자랄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니, 그가 머리를 깎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또 고(故) 직장 이근성(李謹誠)은 문백(文伯)의 諸父(부친의 항렬인 가까운 친척)인데, 정공 이주(鄭公以周)와 이웃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정공은 율곡과 어려서부터 친구로 지낸 사이인데, 그도 역시 “율곡이 처음에 산에서 나와 서울로 들어왔을 때 바로 찾아가 보고 그와 함께 잤는데, 상투가 주먹만큼이나 컸으니, 그가 머리를 깎았다는 세상의 소문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이 직장(李直長)이 직접 듣고서 지세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대체로 볼 때, 사계가 비록 율곡의 문하에서 직접 지도를 받았다고는 하나, 엄한 사제 관계로 볼 때 입산 당시의 일을 감히 물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저 세상에 퍼진 소문만을 듣고서 그러려니 하고 여겼을 것이다. 반면에 김(金), 정(鄭) 두 공(公)으로 말하면, 모두 율곡과 친구로 지낸 사이로서, 그때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말해 준 것인데, 그들 모두 망녕된 말을 할 분들은 아니니, 그 말을 믿어도 좋으리라고 여겨진다.
대저 율곡이 일단 입산한 이상에는 머리를 깎았는지의 여부는 그다지 대수롭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고 하겠다. 하지만 세상의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에는 김(金), 정(鄭) 두 공의 말로 충분하다 하겠다.
“선생께서 풍악(楓岳, 금강산)에 계실 때 변형(變形,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을 뜻함)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율곡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미 산에 들어갔는데, 비록 변형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함정에 빠진 그 마음에야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이 일은 묻지 말라.” 율곡이 산에 들어갔을 때 의암(義庵)이라 자호(自號)하였으니, 대체로 의(義)를 모아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장량(長養)하는 데 뜻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