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廟의 扁額은 大成殿이라고 하였는데, 韓濩의 글씨이다. 대사성 閔鼎重이 일찍이 이를 模印하여 그 뒤에 跋文을 쓰기를, “進善 趙涑이 필법에 정밀하였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聖廟의 殿額을 중국의 사신이 보고는 「옛날에도 견줄 만한 상대가 없는 명필이다.」고 하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만약 옛사람에 견준다면 王羲之는 이만한 글씨를 쓸 수 있겠으나 王獻之는 이만한 글씨를 쓰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한호가 이 편액을 쓸 때에 한 글자를 쓰면서 종이를 수십 장이나 바꿔 가면서 썼는데, 지금까지도 그 餘本이 간직된 것이 있다.’고 하였다. 明倫堂의 편액은 둘인데, 하나는 朱子의 글씨로서 중국에서 模寫해다가 翻刻을 하였다고 하며, 다른 하나는 중국 사신 朱之蕃이 萬曆(明 神宗의 연호) 병오년(1606)에 사명을 받들고 우리나라에 왔을 때 써서 내걸었는데, 주지번은 글씨를 잘 쓰기로 천하에 이름이 났다고 한다. 啓聖祠의 편액과 四賢祠의 편액은 英宗의 어필이고, 丕闡堂의 편액은 文正公 宋時烈이 쓴 것이다.